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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07 14:06
신학기 맞이하는 부모의 자세
 글쓴이 : 수능일번지
조회 : 389  

봄이다. 봄에 온갖 식물이 움트는 이유는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잘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조건들이 충만해지면 각 식물의 특성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계절에 따라 다양한 색채와 크기의 꽃을 피우게 되고 가을엔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된다.

너무도 당연한 이 자연의 섭리가 우리 아이들의 새 학년 새 꿈을 키워가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각기 다른 아이들의 다양한 특성들을 존중하고 있을까? 누구나 똑같은 시간에 꽃을 피워야만 하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배려 받지 못하고 있다.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진 공산품처럼 때가 되면 졸업하고, 때가 되면 그 때까지의 성취로 평가받아야 한다.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사계절은 없는 셈이다. 사회적 시스템이 그러하다면 부모에게라도 배려 받아야 하건만, 우리 부모들조차도 사회적 시스템에 세뇌되어 우리 아이들을 규격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새 학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 아이를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존엄한 존재로 키우기 위해서
우리 부모가 우리 아이를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상품이 아닌 개성을 지닌 인격체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대량 생산을 하는 공장주가 아니라 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쏟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가내 수공업자일 뿐이다. 나아가 우리 아이들의 영혼에 수를 놓고 삶을 설계하는 예술가여야 한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가 냉혹한 요구를 하더라도 최소한 부모는 내 자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예술가의 관점이어야 한다.

공부의 시작은 어디인가?
교과서적으로 즐거움이다. 즐거움이 따르지 않는 공부는 고통일 뿐이다. 고통이 가중되는 시간이 길수록 학생들은 다시 그 길로 들어설 기회를 잃는다. 그렇다면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성취감일 수 있다. 아이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성취감이라면 부모의 칭찬이라는 추임새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통한 성취감은 또 어디에서 오는가? 수준에 맞는 공부다. 수준에 맞지 않는 공부는 학생들에게 상처만을 남기게 된다. 그 상처가 오래되면 열패감에 사로잡혀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여기까지 가지 않으려면 부모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공부의 가장 기본이 되는 동기는 부모의 칭찬일 수 있다.
저학년일수록 그렇다. 성취 단계에 따라 아이들의 목표가 커지게 마련이다. 아이들의 목표라는 것 또한 애지중지 가꾸고 키워 가야할 봄싹 같은 것이다. 속성(速成)은 아이들을 망치는 길이 될 수 있다. 속성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탐구(探究)는 사라지게 된다. 속성은 고학년이 될수록 헤어날 수 없는 늪이 되고 성취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어른들이 바라는 목표의식이나 소위 ‘엄친아’에게 보이는 집중력은 단계별 성취감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는 자녀를 위한 부모의 덕목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자본주의 사회가 설정해 놓은 성취 단계다. 아이들마다 각 단계에 대한 습득의 정도는 다르다. 속도도 다르다. 초기에 빠르다가 후반에 늦어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초기에는 느리다가 후반에 급속한 성취를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다르다. 생긴 것이 다른 만큼 아이들의 특성도 다르다. 우리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아이의 특성을 관찰하고 특성에 맞는 교육단계를 갖춰주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사회적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 아이에게 건네는 한 마디의 말이 우리 아이에게 적절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난무하는 공허한 일반론인가? 우리 부모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치열함으로 부모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남의 아이는 이런데 우리 아이는 왜 이럴까를 말하기 전에 남의 부모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새로운 학년이 되면서 부모만의 꿈에 부풀어 학원을 찾고 학습계획을 짜기 전에 우리 아이의 현 상태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안쓰러운 시선으로 우리 아이를 바라보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 아이의 수준과 눈높이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거기에 모든 성과는 장기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학생의 앞날에 서광이 비칠 것이다.